오프라인 후기

[라이프집에세이] 오늘도 나를 대접합니다

스크랩 아이콘

라이프집

2023.06.21 10:42

조회수 2234



about #라이프집에세이
#라이프집에세이는 개성적인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크리에이터의 집 생활에 관한 에피소드를 공유합니다. 집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행하는 나만의 철학을 갖고 싶다면, 라이프집 에세이에서 인사이트를 얻어보세요! 
🏡 






📝 writer. 안수향 (@2nd_summer)
글과 사진, 가장 좋아하는 것 두 가지로 일을 합니다. 

『서툴지만 푸른 빛』과 『오래된 미래』, 『아무튼, 서핑』을 썼고 몇 번의 사진전을 열었습니다. 지금은 경주에서 작은 요리책 서점을 운영하며 고양이와 함께 잘 살고 있습니다.








"차를 자주 마시게 된 것도 예쁜 그릇에 밥을 담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 
스스로 잘 지은 밥과 시간을 대접하는 것. 
그래서 내가 나를 존중할 기회를 주는 것 말이다. 
나는 이게 바로 요리가 지닌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대충 때우기도 하지만 그래도 제법 오랜 시간 동안 내가 나를 잘 먹인 덕분에 
어쩌면 나는 비관과 자책보다 좀 더 긍정과 희망 편에 서서 
삶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 


오늘도 나를 대접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쯤이었을 거다. 내가 주방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 하루는 달고나를 만들어 먹다가 국자를 태워 먹어서 혼났고 어느 하루는 고로케를 만든다고 싱크대가 온통 빵가루로 소복하게 뒤덮여서 혼이 났다. 참고로 그 후로도 우리 집 주방은 오래오래 물기 마를 날이 없었다. 그렇다. 나는 정말 요리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아마 자주 배가 고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저녁을 먹고 또 저녁을 먹는 일도 잦았다. (애정결핍 증상 중 하나라는 걸 오랜 뒤에 알게 되었다.) 

저녁밥을 먹는 동안에는 왠지 그 어떤 불안이나 허무한 행복도 나를 어쩔 수 없단 기분이 들어 안심이었다. 대충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모으고 열을 가해 변화를 주고 또 그 과정의 총체가 하나의 요리가 되는 장면, 그리고 따스한 뭔가를 내 몸 안에 채우고 있다는 안도만이 작은 식탁 위에 놓여 있다. 그래서 난 요리가 그렇게 좋았는지도 모른다. 아주 가끔은 따뜻한 저녁이, 어린 시절 그 장면 안에 있었으니까. 그렇게 동생과 떡볶이를 만들어 먹으며 보낸 무수한 토요일 저녁을 보내며 결국 어른이 됐다. 나는 이제 밥 말고도 글과 사진을 지어 먹고 산다.

작가로 살겠다는 결심은 많은 내용을 함의한다. 일단 배고픔을 견뎌야 한다. 수입이 없을 때는 월세 내고 나면 라면 먹을 돈도 없을 때가 있다. 수입이 생겨도 혹시 몰라 아껴 써야 하고. 가끔 카페에 가더라도 웬만하면 식사로 때울 수 있는 곳을 선호하게 됐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집과 친해져야 한다. 작년엔 거의 6개월 정도 집에 틀어박혀서 『아무튼, 서핑』을 썼다. 집에서 대부분 끼니를 해결해야 하니 자연스레 할 줄 아는 요리도 는다는 장점도 있지만, 아마 내가 집순이가 아니었다면 진즉 다시 회사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작가 수입으로만 먹고 산 것이 대략 7년 전부터. 따로 작업실이 있다면 물론 좋겠지만, 무엇보다 집이 작업실이 될 수 있으면 가장 좋은 답안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집에서 세 권의 책을 세상에 내보냈고 사진전도 여럿 준비했다. 가끔 산책이 너무 고프면 일부터 집에서 먼 시장이나 슈퍼마켓에 다녀오기도 한다. 제철을 맞은 식재료는 저렴하고 맛도 좋아서 보이거든 얼른 장바구니에 담는다. 그러고 집에 돌아와 장 본 것들을 잘 정리하고 다듬어 그날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거다. 해야 할 일이 조금 남아있지만 내일 마저 하기로 하자. 그리고 식사를 다 하면 차를 내려 마셔야겠단 생각을 한다. 어느덧 물과 기름이 보글보글 끓는 따뜻한 주방과 나의 집 안에서, 나는 여전히 안도한다.


⊹ 



© 안수향 



예전과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테이블웨어나 티웨어를 모으기 시작했다는 거다. 한때 도자기 공방에 다니며 조물조물 만든 것들도 썩 마음에 들어서 자주 쓴다. 거의 혼자 해 먹는 밥에 뭐 그리 유난인가 싶다가도 예쁜 그릇에 지은 밥과 음식을 담고 예쁜 커트러리를 들고 식사하다 보면, 내가 나를 대접하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오늘도 어김없이 식사를 하고 나니 따뜻한 차가 당긴다. 설거짓거리를 미뤄 두고 차 도구를 주섬주섬 꺼낸다. 오늘은 꽃과 꿀향 그득한 대만 금훤이 좋겠어. 개완이 좋을까, 아니면 유리 숙우(우린 차를 모아 담는 그릇)에 바로 물을 붓고 찻잎을 구경할까 고민하다가 숙우에 찻잎을 담고 뜨거운 물을 쪼르륵 붓기로 한다. 진하게 마시는 걸 좋아해서 찻잎을 1인분보다 좀 더 담는다거나, 일부러 잔을 두 개 놓고 혼자 다 마시는 바보 같은 짓을 하는 것도 오직 집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차를 자주 마시게 된 것도 예쁜 그릇에 밥을 담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 스스로 잘 지은 밥과 시간을 대접하는 것. 그래서 내가 나를 존중할 기회를 주는 것 말이다. 나는 이게 바로 요리가 지닌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대충 때우기도 하지만 그래도 제법 오랜 시간 동안 내가 나를 잘 먹인 덕분에 어쩌면 나는 비관과 자책보다 좀 더 긍정과 희망 편에 서서 삶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배는 고프지만, 집에서 참 즐거운 7년을 보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Credit

Editor Haeseo Kim
Design Jaehyung Park
Production SIDE Collective 

122

119

댓글 등록 시 3미닛 적립 (1일 10건까지)

댓글

꽝e

나에게주는행복 ㅎ

2024.10.06 00:34

0

답글쓰기

현지3982

내가 나를 대접한다는게 너무 좋네요 요리의 힘

2024.09.24 16:38

0

답글쓰기

밤하늘그리고별

부럽습니다.. 전 이제 갈데가없네요..

2024.09.24 03:50

0

답글쓰기

유차닝

나만의 시간은 정말 필요한것 같아요. 낭만있고 멋지네요^^

2024.09.23 21:09

0

답글쓰기

황준열

너무 매력적인 멘트같아요ㅎ

2024.09.22 11:17

0

답글쓰기

내꼬라지

항상 나를 손님이라고 생각하고 손자 먹더라도 한상 차려 먹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게 현실이네요

2024.09.15 07:26

0

답글쓰기

침착한샐러드

바쁜 일상 속 나를 대접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네요

2024.09.13 13:37

0

답글쓰기

날아라호빵맨

나를 대접하는거 너무 멋집니다

2024.09.12 20:11

0

답글쓰기

복보

감성이 너무 따뜻해요 놀러가고싶은 집이네요🤎

2024.09.12 18:22

0

답글쓰기

수아쓰

집이 최고에요 😆

2024.09.04 23:31

0

답글쓰기

우주야7

스스로를 대접하는것, 쉽게 잊어버리는데 다시금 깨닫고갑니다 감사해요

2024.09.04 10:55

0

답글쓰기

쏭쏭쿠

나에게 대접해줘야겠어요!

2024.09.03 20:50

0

답글쓰기

kiss****

나만의시간을보내고싶네요-부럽네요-

2024.09.03 19:33

0

답글쓰기

매새

저도 저에게 대접해봐야겠어요♡

2024.08.19 18:03

0

답글쓰기

화이팅6

와! 대단하다

2024.08.15 12:33

0

답글쓰기

스마일톡톡

지치고 힘든 나를 위해 나를 대접한다 라는말이 참 와닿네요 감사합니다

2024.08.13 14:33

0

답글쓰기

밖은위험해

다재다능하시네요! 본인이 좋아하고 잘하는게 뭔지 알고...그 방향으로 삶을 꾸려가는 모습 존경스럽습니다.. 그리고 너무너무 귀여운 냥이와 함께라니!

2024.08.10 17:29

0

답글쓰기

니야오

귀여운 턱시도냥..

2024.08.09 20:27

0

답글쓰기

돌주먹

내가 나를 대접한다는 기분! 그말 너무 좋은거같아요 ㅎㅎ

2024.07.27 18:54

0

답글쓰기

choizip

맞아요 혼자 있어도 바쁠수록 잘 차려먹어야 해요😌

2024.07.20 20:29

0

답글쓰기

끼리릭 틱

모두 대접받기 원하지만 본인을 대접하며 사는 삶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싶네요. 제가 요즘 추구하는 방향이기도 하고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24.07.18 18:01

0

답글쓰기

비뉴

자신에게 친절하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2024.07.07 10:26

0

답글쓰기

안나3

나를 대접하라~바쁜 일상에 놓치고 있었던.. 조금씩 해볼게요

2024.07.06 16:43

0

답글쓰기

빠비뉴

나 스스로를 대접하는 일이라. 어쩌면 가장 중요항 일인거 같아요

2024.06.28 00:40

0

답글쓰기

크낙

저를 대접하는 것도 막상 해보려니 어렵네요 ㅎㅎ ㅜㅠ

2024.06.27 01:28

0

답글쓰기

위잉위잉

저를 되돌아 봐야 겠어요

2024.06.25 13:25

0

답글쓰기

홈스윗홈0

오늘부터 저를 대접해볼게요

2024.06.18 08:39

0

답글쓰기

멜리사

난 나를 대접하고 있나 뒤돌아보게 되네요

2024.06.10 17:12

0

답글쓰기

드드

나를 대접한다는 말이 인상적이어서 클릭했는데 글이 참 포근한 느낌이 드네요 아주 좋아요:)

2024.06.02 23:03

0

답글쓰기

클덕

소소하지만 감각 있는 사진들이 눈길을 끄네요 잘 보고 가요

2024.05.31 13:27

0

답글쓰기


이전글목록다음글

관련 콘텐츠

🎅벌써 미리 메리크리스마스🎄

🎅벌써 미리 메리크리스마스🎄

쪼꼬빵뚠

욕실 이것만 설치했는데 분위기가 바꼈어요!

욕실 이것만 설치했는데 분위기가 바꼈어요!

kkiri_home

이랬던 거실 어떻게 바꼈을까요?😆

kkiri_home

햇살이 스며드는 오후, 🧡

Chuchu_irene

우리집 브라운🏠

우리집 브라운🏠

청이네집사

신발장 리폼했어요☺️

신발장 리폼했어요☺️

kkiri_home

브라운계열 바닥

브라운계열 바닥

엄마봉틀러

벽선반

벽선반

은주101

🍂 변덕스러운 날씨

🍂 변덕스러운 날씨

드리밍룸룸

데스크테리어에 진심이면✨️

데스크테리어에 진심이면✨️

드리밍룸룸

인기 콘텐츠

공감순
댓글순
조회수
물놀이에 진심인 엔집사 176엔집사의 B급 감성

이브 175dlffpr****
이 사이트는 reCAPTCHA의 보호를 받으며
Google 개인정보처리방침 및 서비스 약관이 적용됩니다.

로그인하여 나만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로그인
커뮤니티
마이.z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