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후기
[라이프집에세이] 나도 마당 있는 주택은 처음이라

라이프집
2023.05.24 10:41
조회수 2250
about #라이프집에세이
#라이프집에세이는 개성적인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크리에이터의 집 생활에 관한 에피소드를 공유합니다. 집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행하는 나만의 철학을 갖고 싶다면, 라이프집 에세이에서 인사이트를 얻어보세요! 🏡

📝 writer. 임지선 (@yimmjisun)
성북동 골목 안 오래된 살구나무가 있는 집에 살고 있습니다.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브랜드 기획자입니다. 브랜드의 이야기를 다듬고 만들어 냅니다. 공간과 브랜드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한겨레에서 <브랜드로 공간읽기> 칼럼을 연재했습니다.
.jpg)
©임지선
"내가 처음 겪는 육아에 혼이 쏙 나갔던 것처럼
마당 있는 주택도 처음이라 호되게 당하고 있나 보다.
좀 익숙해졌나 싶다 가도
계절을 마주칠 때마다 예상 못 한 새로운 게 툭툭 튀어나온다.
어쩜 이리 저마다의 속도로 싹 틔우고 열매 맺고 잎을 떨어트리는지.
그리고 그게 또 얼마나 보람차고 값지고 귀한지."
⊹
나도 마당 있는 주택은 처음이라
서울 시내에 마당 있는 주택이라고? 모아둔 돈도 쥐꼬리만 한 내가 감히 이런 곳에 살아도 되는 거야? 독립 후 반지하, 연립, 셰어 하우스, 다세대 구옥, 엘리베이터 없는 5층에 살던 내가 마당에 살구나무 곱게 심어진 자쿠지 있는 단독주택에 산다고? 이거 실화야? 그렇게 감격과 감동의 이사 후 사계절을 보내고 뉘앙스가 좀 바뀌었다. 이거 실화야…?
열매는 저절로 없어지고 낙엽은 알아서 바람에 날아가는 줄만 알았지. 겨울은 마냥 포근하고 여름은 그저 청량할 줄만 알았다고. 영화 속 나오는 마당 있는 집처럼 말이야. 왜 아무도 주택살이의 어려움은 얘기 안 해준 거야?
시작은 아기 주먹만 한 살구가 열리던 초여름부터였다. 토실토실 자라나는 살구 열매를 보며 그저 흐뭇하게 살구잼을 만들까, 살구에이드를 해 먹을까 즐거운 고민에나 빠져있었다. 어떤 고난이 다가오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햇살 머금은 살구가 탐스러운 주황빛을 띠자마자 친구들을 불러 살구도 따고 바베큐도 해 먹고 맥주도 마시며 몇 날 며칠이 즐거웠다. 이웃도 나눠주고 우리도 잔뜩 먹고. 아니 그런데, 왜 살구가 안 줄어들지? 아무리 줍고 거둬도 저 위에 몇십 개, 아니 몇백 개는 더 있었다. 미처 못 주운 열매엔 금세 벌레가 꼬이기 시작했다. 매일 눈 뜨면 줍고 틈나면 줍고 자기 전에도 주워야 했다. 주말에 큰맘 먹고 남편과 몸 부서져라 살구를 주워 보니 20L 봉투 가득 스무 봉지가 나오더라. 근육통으로 사흘 내내 앓은 건 당연히 따라오는 별첨 부록이었고. (아, 참고로 이 노동은 가을에 감이 열리며 똑같이 반복되었다.)
마당 있는 주택, 보통내기가 아니다. 봄에는 꽃잎 치우고 진딧물 털어주고, 여름에는 열매 따고 열매 줍고 벌레 쫓고 가을엔 낙엽 쓸고 낙엽 쓸고 낙엽 쓸고 겨울엔 눈 쓸고 얼음 깨고 고드름 따고. 그뿐이랴. 동파와 결로와의 싸움도 만만치 않다. 추워지기 전 수도 잠그고 열선 잘 감아주고, 한겨울에도 아침에는 빠릿빠릿 창문 열어 환기해야 한다. 아파트 살 때는 신경 쓰지 않고 흘러갔던 일 들이 하나하나 기억하고 챙겨야 할 우리 가족의 일이다. 어디 새는 덴 없는지 어는 덴 없는지 계절이 바뀔 때마다 구석구석 들여다보고 관리해 줘야 한다. 마치 정성껏 아이를 돌보듯 바지런히 움직이고 들춰보는 마음가짐이 없으면 안 된다는 걸 주택 살기 전에는 몰랐지.
⊹
그럼에도 불구하고(나는 이 관용구로 시작하는 반전의 문장을 좋아한다.) 나는 마당 있는 주택이 좋다.
.jpg)
.jpg)
© 임지선
여름 내내 먹어도 모자라지 않을 살구를 주는 커다란 살구나무를 사랑한다. 얼기설기 쳐 놓은 텐트에 세 식구 쏙 들어가 킬킬대는 무용한 시간이 귀여워 죽겠다. 휘휘 모기 쫓으며 장작에 불붙이고 밤새 좋아하는 이들과 도란도란 수다 떠는 밤이 좋다. 장작불 안에 넣어둔 고구마도 옥수수도 좋다. 차가운 물 넘실거리게 받은 조그만 자쿠지에 풍덩 들어가 직접 만든 수박 주스 벌컥벌컥 마시며 '나는 세상 최고 행복한 여자야!' 외치고 남편한테 따봉 날리는 여름날들이 좋다. 새들이 깨워주는 이른 아침도, 햇볕 머금은 나뭇가지 차르르 흔들리는 한낮도, 주황빛 노을이 집 안을 가득 메우는 벅찬 초저녁도 너무, 너무너무 소중해서 마당 있는 주택을 예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어느 밤 어스름하게 불 밝힌 성북동 골목을 걸으며 남편과 얘기했다.
"있잖아, 남편."
"응."
"만약에 행복의 절대적 기준치가 100이라면, 마당 있는 집에 살게 된 이후로 나의 행복은 50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것 같아. 그러니까… 아무리 모진 풍파에 깨지고 시달려도 내 삶은 무조건 절반 넘게 행복한 거야! 최고지!"
이렇게 나만의 주관적인 셈법을 들이밀며 한참을 둘이 깔깔대며 걸었다.
아이가 막 첫돌을 맞았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마당 있는 주택살이가 꼭 아이 키우는 것 같더라. 더워지면 너무 더울까 걱정, 추워지면 춥진 않나 걱정. 아침 일찍 일어나 매일 들여다보고 어디 아프진 않나 걱정하고 미리 챙겨주고 하는 것까지 똑 닮았지. 그래, 내가 처음 겪는 육아에 혼이 쏙 나갔던 것처럼 마당 있는 주택도 처음이라 호되게 당하고 있나 보다. 좀 익숙해졌나 싶다 가도 계절을 마주칠 때마다 예상 못 한 새로운 게 툭툭 튀어나온다. 어쩜 이리 저마다의 속도로 싹 틔우고 열매 맺고 잎을 떨어트리는지. 그리고 그게 또 얼마나 보람차고 값지고 귀한지. 힘든 이유는 백 개도 넘게 줄줄댈 수 있는데 결국 마무리로는 그래도 참 좋다, 이 한마디뿐이다. 그러니까,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당 있는 주택에서 살기로 했다.
Credit
Editor Haeseo Kim
Design Jaehyung Park
Production SIDE Collective
141
175
댓글 등록 시 3미닛 적립 (1일 10건까지)
댓글

시골드리머
시골태생이라 마당있는 집이 늘 그리운 사람에게 너무 부러운 집이네요~행복하세요~
2023.05.25 11:48
5
답글쓰기

밍밍지
잘읽었습니다
2023.05.25 10:20
5
답글쓰기

조이zoey
마당있는집이 언제나 로망이었는데 잘 읽었습니다:)!
2023.05.24 23:49
5
답글쓰기

slowdive
그래도 참, 좋아보여요 !
2023.05.24 23:22
5
답글쓰기

dbdmsgml00
주택살이 너무 멋지고 이뻐요 ㅎㅎ관리하기가 힘들다곤 하는데 그래도 낭만!!
2023.05.24 21:48
6
답글쓰기

유소유
부럽습니다 ㅎㅎ
2023.05.24 21:25
5
답글쓰기

마슝이집사
어떻게 저렇게 사랑스럽고 이쁜말을 할 수 가 있죠.. 저의 머리로는 도저히 떠오르지 않네요
2023.05.24 21:10
6
답글쓰기

진주어멈
좀 고생스러워도 마당있는 집에서 강지랑 같이 살고 싶어요
2023.05.24 21:07
5
답글쓰기
드리밍룸룸
마당있는 집🤎잡초도 무성해지고 온갖 시련에 부지런해야한다지만 너무 로망이에요-
2023.05.24 20:59
5
답글쓰기

냐냐
마당있는 주택 생활 부지런해야겠지만 언젠가 꼭 해보고싶은 로망이에요!
2023.05.24 20:55
5
답글쓰기

빛은
주택은 장단점아 확실한데 온전히 나만의 공간을 즐길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인 것 같아요!
2023.05.24 20:26
5
답글쓰기

최예린
정말 영화에 나오는 집 같아요… 살구나무가 저렇게 이쁜 거였다니!
2023.05.24 19:57
6
답글쓰기

룽쟈
주택에 산다는 건 그 만큼 시간과 정성을 더 들여야 하는 일인데 멋지고 부러워용
2023.05.24 17:50
5
답글쓰기

에드몽단테
어릴 적 단독주택에 살았는데, 정말 부지런한 사람만 살 수 있는 공간이란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2023.05.24 15:56
4
답글쓰기

클로드
주택에서는 사는 건 부지런한 사람만 누릴 수 있는 축복인 것 같아요
재미있는 글 잘 읽었네요
2023.05.24 14:13
5
답글쓰기
바이쥴
좀 더 넓은 마당을 꿈꾸며 작은 단독주택에 살고 있어요 :) 글이 너무 잘 읽히고 공감되어 재미있네요!
2023.05.24 13:48
6
답글쓰기

naeuiji
무조건 절반 넘게 행복하다니 너무 부러워요 !
2023.05.24 13:31
5
답글쓰기

태리
겨울... 마당 사진 보고 감탄했습니다👍
2023.05.24 12:16
5
답글쓰기

-33
저도 그래요. 작은 마당있는 주택.
벌레와 낙엽과 지렁이와 ... 저희집은 대추와 싸웁니다... 그래도 그래도 마당이 있어 좋아요 :)🫠
2023.05.24 12:14
6
답글쓰기

pang :-)
마당있는집의 로망..
2023.05.24 11:47
5
답글쓰기

서희의우주
마당있는집에서 살아봤는데, 보통 부지런해선 난장 마당을 벗어날수가 없더라구요 특히 계절바뀔때 ㅋㅋ
2023.05.24 11:42
5
답글쓰기

뮤뮤
하,, 에세이 너무 부드럽고 따뜻하고 다정하구...
2023.05.24 11:33
5
답글쓰기

은방울숲
부러운 주택살이,,,
2023.05.24 11:15
5
답글쓰기

키키하루
우와 너무 멋져요
2023.05.24 11:06
5
답글쓰기

알로하융
이번 에세이 정말 좋아요 🥲
2023.05.24 10:46
6
답글쓰기
관련 콘텐츠
인기 콘텐츠
공감순
댓글순
조회수
물놀이에 진심인 엔집사 176엔집사의 B급 감성
이브 175dlffpr****
원피스입은 고냥이 174욤뇸뇸7
깡총이는 명상중 159행복한파티
신나는 일요일, 회크닉 ✨ 155refresh_
이 사이트는 reCAPTCHA의 보호를 받으며
Google 개인정보처리방침 및 서비스 약관이 적용됩니다.
Google 개인정보처리방침 및 서비스 약관이 적용됩니다.







![[별의별zip스터] 최애 색깔로 가득 채운.zip](https://image.lifezip.kr/common/75_3cc66e4a62_6c08f06c1c4043ed97f5762bf2226701.jpg)
 (1).p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