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작업실
그는 그저 일했다
a1004
2025.02.04 14:41
조회수 11
그는 그저 일했다
택배노동자 고(故) 정슬기
(1983~2024)
"오늘 밤이 제 휴무이긴 한데, 쉬고 나서도 몸이 안 좋으면 혹시 내일 근무를 바꿔주실 수 있나 해서요. 몸이 영 안 좋네요."
지난해 5월 28일 아침 7시를 갓 넘긴 시각, 정슬기씨는 동료 택배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느 날처럼 야간배송을 마친 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슬기씨는 오후 9시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서울 중랑구 상봉동 일대로 택배 상품을 배송했다. 1년 넘게 거의 매주 화요일에만 쉬었다. 주6일 근무. 명절 연휴에도 일했고, 아파도 일을 거르지 않았다.
전날 밤부터 몸이 심상치 않았다. 본인이 고용한 아르바이트 기사에게 "지금부터 배달을 해달라"고 부탁한 게 밤 10시 30분쯤이었다. 평소 오전 2시부터 아르바이트 기사에게 물량 40~100개 정도를 맡겼지만, 이날만은 오후 11시 30분부터 물량 400개 중 234개를 맡겼다. 중간에 30분간 차 안에 누워서 휴식도 취했다. '시간과의 싸움'인 이 일을 하면서 흔치 않은 일이었다.
평소보다 택배 100개 정도를 덜 배송했지만, 몸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런 몸으로 다음 날 일하는 건 무리라고 봤다. 다행히 동료는 "오늘 밤 하루 쉬어보시고, 그래도 몸이 안 좋으시면 근무 바꿔드리겠다. 연락 달라"고 답했다.
집에 도착하니 장모님이 아이들 등교를 돕고 있었다. 비에 젖은 옷을 벗었다. 건조기가 얹혀 있는 일체형 구조라, 드럼 세탁기로 옷을 넣으려면 상체를 앞으로 구부려야 했다. 몸을 앞으로 숙이자 입에서 신음 소리가 터져나왔다. "아침 드세요"라는 아이들 목소리도 듣는 둥 마는 둥, 복층에 올라가 누웠다. 휴대폰으로 '팔이 저리고 숨이 안 쉬어지는 증상'을 검색했다.
"엄마, 아빠가 쓰러져서 움직이지 않아."
아내는 119신고 먼저 하라고 한 뒤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남편은 부엌 냉장고 앞에 쓰러져 있었다. 넘어지면서 부딪혔는지, 냉장고에 움푹 파인 자국이 있었다. 몸이 굳은 채 식은땀이 흘렀고, 새파래진 입술 사이로 분비물이 흘러나왔다. 6시 20분쯤 구급대원이 도착했지만, 이미 슬기씨의 의식은 없었다. 구급대원은 심폐소생술을 진행한 뒤, 30분 정도 지나 병원으로 출발했다. 아내가 구급차에 함께 올랐다. 병원 도착 시간 오후 7시.
'병원만 가면 살 수 있겠지.' 아내의 소망은 무참히 깨졌다. 전기 충격도 아무 효과가 없었고, 병원은 결국 심폐소생술을 중단했다. 오후 7시 22분, 사망 판정이 내려졌다. 사인은 심실세동과 심근경색이었다. 향년 4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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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에서도 하지 않는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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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복지공단은 지난해 10월 슬기씨의 산재를 인정했다. 공단 재해조사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겼다. ①발병 전 4주간 1주 평균 업무시간 74시간 24분(야간근무 30% 할증 적용 시) ②1월부터 사망일까지 하루 평균 배송물량 279개, 하루 취급 무게 446㎏ ③담당 구역 변경 후 하루 평균 325개 ④주 6일 휴게시간 없는 고정 야간근로.
임상혁 녹색병원 원장(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은 소견서에 이렇게 썼다. "망인은 업무로 인해 심근경색이 발생하여 사망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특히 야간노동, 정신적 긴장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연속적인 고정된 야간노동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논문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는 연속적인 고정된 야간노동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너무 위험한 노동이라 어느 나라에서도 시행하지 않는 노동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한국일보 중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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