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작업실
강진 여행 두번째 이야기: 영랑생가

에드몽단테
2023.02.28 03:07
조회수 380
사의재를 보고 다음 코스로 도착한 곳은 시인 김영랑의 생가였어요.
(사의재와는 차로 5분이내 거리로 도보로도 이동 가능합니다.)
수능 언어영역을 열심히 공부했던 스마트한 당신이라면 교과서 단골 수록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 을 기억하실 겁니다.
생각나지 않는다고 맘 상하진 마시길...저도 제목하고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 정도만 생각이...
그래서 제가 준비했습니다.
이 작품에서 모란이 피기까지가 상징하는 바가 무엇이냐는 시험문제가 자주 나왔었기에 아마 학교를 모범적으로 다닌 여러분들이라면 "조국의 해방과 자유에 대한 기다림"이란 정형화된 정답이 생각나셨을 겁니다.
저는 학교를 설렁설렁 다녀서인지 좀 다른 해석을 보태고 싶기도 합니다.
이 시를 T.S.엘리엇의 "황무지"와 연결지어 해석을 하자면 모란은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목표나 삶의 방향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봄은 그 목표를 이루게 되는 그 어느 시점이며 목표가 소실되어 삶의 방향을 잃게 되는 시기라고......삶의 방향을 잃은 후 정신적 방황이 오게 되는 계절, 즉 봄이야말로 찬란하지만 슬픈 계절인 것이라고......
T.S. 엘리엇이 4월은 잔인한 달이란 표현을 사용했 듯 영랑도 봄을 슬픔의 계절이라 표현한 이유가 바로 이런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T.S.엘리엇의 "황무지"가 1922년 작품이고 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1934년 작품인 걸로 보았을 때 시기적으로 두 작품 모두 그 당시 삶의 방향과 의욕을 잃은 사람들의 정신적 황폐함을 그린 작품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는....
너무 깊게 생각을 한 것일까요?
참고로 이건 제가 대학 때 영미문학을 수강하면서 생각했던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입니다. T.S.엘리엇의 작품을 읽고 4월은 잔인한 달이란 표현이 너무나 멋진데 뭔가 와닿지는 않던 그런 시기의 생각이었죠. 세월이 흘러 지금의 나이가 되니 뭔가 어렴풋이 아니 좀 더 확실하게 이런 표현들이 와닿는다고 해야 할까요? 서른 즈음에 세웠던 인생의 장기적인 목표들이 어느정도 실현돼버린 지금의 저는 오히려 아무것도 없었지만 희망에 가득차 있던 그 시절의 저를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강진 여행중에 삼천포 여행을 하고 말았군요.
다시 영랑생가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위대한 시인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어서 그런지 초가집 두채가 보임에도 뭔가 웅장하고 스펙타클한 기운이 느껴지더군요.

<관광택시 선생님?이 열심히 해설을 해주고 계십니다.>
막상 집 안으로 들어가 보면 크게 볼거리는 없답니다. But 실망하긴 이릅니다.
집 뒷편에 난 길을 따라 올라가 보면...

<강진군 세계 모란공원>
오오! 이런 곳이 나오는군요. 숨겨져 있는 비경입니다.

모란꽃이 활짝 피어 있습니다.

잘 가꾸어진 화단이네요.

마치 책속의 다른 세계로 이어진 느낌입니다.
이 곳을 나와 조금만 걸어가면...
바로 옆에 시문학파 기념관이 나옵니다.

이 곳이 어떤 곳이냐면....

<기념관 내부: 사색하는 설정샷에 심취한 안단테>
시문학파, 즉 1930년 창간한 "시문학"의 주요 시인 박용철,김영랑,정인보,변영로,이하윤,정지용 등의 작품들과 그 당시 실제 출간된 서적들을 전시한 박물관입니다.

<전시물>
그런데 말입니다.
저희 일행이 보이지 않습니다.
제 와이프는 당근 제 그림자가 되어 제 곁에 항상 있었지만....

바로 요녀석...요녀석이 보이질 않았던 겁니다.
누구냐고요?
간단히 두글자로 베프라고 해두죠.
고인물 회원들께서는 이전에 당신에겐 존경하는 친구가 있냐는 포스팅을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네, 바로 그 포스팅의 주인공이 저 친구입니다.
왜 베프를 데리고 왔냐구요?
원래 저희 부부만 여행을 하려 했는데, 문의 사항이 있어 알아 보던 중 관광택시 정원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뒷좌석에 2명이 타면 조수석에 한 명을 더 태울 수 있는 것이었죠. 그래서 한 명을 더 데리고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저 친구에게 연락을 취했더니 선뜻 따라오더라구여 ㅋㅋㅋ...그것도 전날 당직을 서고 말이죠.
그런데 직업이 기자이다보니 뭔가 급하게 일거리가 생겼나 봅니다. 전화 한통을 받고 나더니 사의재부터 계속 일만하고 있네요. (너 왜 온거니? ㅋㅋㅋ )
어쨌든 시문학파 기념관 입구에 앉아 노트북을 두들기고 있으니 폼은 납니다.
요번 포스팅은 여기까지 입니다.
저도 지금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는데 밧데리가 간당간당 하는군요.
다음 행선지는 하멜 기념관입니다. 기대해 주시길...

(사의재와는 차로 5분이내 거리로 도보로도 이동 가능합니다.)

수능 언어영역을 열심히 공부했던 스마트한 당신이라면 교과서 단골 수록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 을 기억하실 겁니다.
생각나지 않는다고 맘 상하진 마시길...저도 제목하고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 정도만 생각이...
그래서 제가 준비했습니다.

이 작품에서 모란이 피기까지가 상징하는 바가 무엇이냐는 시험문제가 자주 나왔었기에 아마 학교를 모범적으로 다닌 여러분들이라면 "조국의 해방과 자유에 대한 기다림"이란 정형화된 정답이 생각나셨을 겁니다.
저는 학교를 설렁설렁 다녀서인지 좀 다른 해석을 보태고 싶기도 합니다.
이 시를 T.S.엘리엇의 "황무지"와 연결지어 해석을 하자면 모란은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목표나 삶의 방향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봄은 그 목표를 이루게 되는 그 어느 시점이며 목표가 소실되어 삶의 방향을 잃게 되는 시기라고......삶의 방향을 잃은 후 정신적 방황이 오게 되는 계절, 즉 봄이야말로 찬란하지만 슬픈 계절인 것이라고......
T.S. 엘리엇이 4월은 잔인한 달이란 표현을 사용했 듯 영랑도 봄을 슬픔의 계절이라 표현한 이유가 바로 이런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T.S.엘리엇의 "황무지"가 1922년 작품이고 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1934년 작품인 걸로 보았을 때 시기적으로 두 작품 모두 그 당시 삶의 방향과 의욕을 잃은 사람들의 정신적 황폐함을 그린 작품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는....
너무 깊게 생각을 한 것일까요?
참고로 이건 제가 대학 때 영미문학을 수강하면서 생각했던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입니다. T.S.엘리엇의 작품을 읽고 4월은 잔인한 달이란 표현이 너무나 멋진데 뭔가 와닿지는 않던 그런 시기의 생각이었죠. 세월이 흘러 지금의 나이가 되니 뭔가 어렴풋이 아니 좀 더 확실하게 이런 표현들이 와닿는다고 해야 할까요? 서른 즈음에 세웠던 인생의 장기적인 목표들이 어느정도 실현돼버린 지금의 저는 오히려 아무것도 없었지만 희망에 가득차 있던 그 시절의 저를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루어졌다는 건 찬란하지만 슬픈 일입니다.
무언가를 희생한 이루어짐 뒤엔
공허의 시간을 견뎌야하는 고통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아! 강진 여행중에 삼천포 여행을 하고 말았군요.
다시 영랑생가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영랑생가 풀샷>
위대한 시인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어서 그런지 초가집 두채가 보임에도 뭔가 웅장하고 스펙타클한 기운이 느껴지더군요.
<관광택시 선생님?이 열심히 해설을 해주고 계십니다.>
막상 집 안으로 들어가 보면 크게 볼거리는 없답니다. But 실망하긴 이릅니다.
집 뒷편에 난 길을 따라 올라가 보면...
<강진군 세계 모란공원>
오오! 이런 곳이 나오는군요. 숨겨져 있는 비경입니다.
모란꽃이 활짝 피어 있습니다.
잘 가꾸어진 화단이네요.
마치 책속의 다른 세계로 이어진 느낌입니다.
이 곳을 나와 조금만 걸어가면...
바로 옆에 시문학파 기념관이 나옵니다.
이 곳이 어떤 곳이냐면....
<기념관 내부: 사색하는 설정샷에 심취한 안단테>
시문학파, 즉 1930년 창간한 "시문학"의 주요 시인 박용철,김영랑,정인보,변영로,이하윤,정지용 등의 작품들과 그 당시 실제 출간된 서적들을 전시한 박물관입니다.
<전시물>
그런데 말입니다.
저희 일행이 보이지 않습니다.
제 와이프는 당근 제 그림자가 되어 제 곁에 항상 있었지만....
바로 요녀석...요녀석이 보이질 않았던 겁니다.
누구냐고요?
간단히 두글자로 베프라고 해두죠.
고인물 회원들께서는 이전에 당신에겐 존경하는 친구가 있냐는 포스팅을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이전 포스팅이 궁금하시다면 여기를 클릭!!!
네, 바로 그 포스팅의 주인공이 저 친구입니다.
왜 베프를 데리고 왔냐구요?
원래 저희 부부만 여행을 하려 했는데, 문의 사항이 있어 알아 보던 중 관광택시 정원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뒷좌석에 2명이 타면 조수석에 한 명을 더 태울 수 있는 것이었죠. 그래서 한 명을 더 데리고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저 친구에게 연락을 취했더니 선뜻 따라오더라구여 ㅋㅋㅋ...그것도 전날 당직을 서고 말이죠.
그런데 직업이 기자이다보니 뭔가 급하게 일거리가 생겼나 봅니다. 전화 한통을 받고 나더니 사의재부터 계속 일만하고 있네요. (너 왜 온거니? ㅋㅋㅋ )
어쨌든 시문학파 기념관 입구에 앉아 노트북을 두들기고 있으니 폼은 납니다.
요번 포스팅은 여기까지 입니다.
저도 지금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는데 밧데리가 간당간당 하는군요.
다음 행선지는 하멜 기념관입니다. 기대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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