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작업실
사의재

에드몽단테
2023.02.26 23:56
조회수 210
전남 강진 여행을 시작하며 처음 도착한 곳은 "사의재"라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전생에 제가 정약용이었던 걸까요?
이 의문은 오래지 않아 풀렸습니다.
블라블라~~ 네 네 좋은 말씀들이군요.
그런데 이 곳에서 유명한 건 다산선생만이 아니더군요. 바로 이분, 이분이 이 곳의 진정한 스타

주모???
네 사극에서 단골로 출연하는 그 주모가 맞습니다.
사의재 바로 옆에 주모상이 있고 주막도 차려져 있었습니다.
왜 정약용 상 대신에 주모 상이 떡하니 있는지 궁금하실 분들이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처음엔 의아했는데 바로 이 주모가 오늘의 다산 정약용을 있게 한 멘토였더라구여
무슨소리냐구여?
다산이 처음 이 곳 강진에 유배를 와서 처음 1년간 골방에서 멍때리며 폐인생활을 하고 있던 중 주막 주모가 보다 못해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하네요.
(유배 온 다산을 모두가 기피하였는데 주막 주모가 다산을 돌보겠다고 나서 주막 한켠에 다산의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고 합니다.)
이게 얼마나 센세이션한 발언이냐면 말이죠.
병조참의와 암행어사 등 요직을 두루 거친 40세의 정약용은 지금으로 치면 장차관급 요직을 지낸 거물중의 거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정약용에게 일개 아녀자, 그것도 주막 주모가 혀를 끌끌차며 너 한심해 못보겠으니 요고라도 해보라고 크게 일침을 가한 것이죠.
정약용은 이 때 큰 깨달음이 있었는지 아님 자기 자신이 부끄러워졌는지 그날 부로 제자를 받아 가르치고 집필활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는 경세유표, 목민심서 등의 도서들도 이 시기에 저술된 것이며 강진에서의 유배생활 중 약 500여권의 서적을 집필하였다고 합니다. (실학의 집대성 ㄷㄷㄷ)


주막 앞에서 열심히 설명하고 계시는 관광택시 기사분( 해설사를 겸직하고 있더라는 )
with 러블리 와이프님 찬조출연
to be continued
이 곳은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로 유명한 곳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첨에 이 곳에 도착했을 때 낯설지 않은 풍경이...
마치 과거에 이미 이런 풍경을 본 듯한 이 기시감의 정체는 무엇???전생에 제가 정약용이었던 걸까요?
이 의문은 오래지 않아 풀렸습니다.
오래전(20여년 전) 남도기행이란 단체관광을 하면서 이 곳에 들렸던 기억이 문득 떠오른 것이죠.
그 때는 버스로 단체관광을 와서 정신없이 우르르 내렸다 우르르 떠나서 이 곳에 왔었다는 걸 깜박 잊고 지냈던 겁니다.
ㅎㅎㅎ 전생여행 하는 줄 알고 깜놀했는데...
내친김에 강진군청에서 소개하는 사의재 정보도 보고 갈께요.
사의재(四宜齋)는 다산 정약용이 1801년 강진에 유배 와서 처음 묵은 곳이다.
사의재는 이곳 주막집(동문매반가) 주인 할머니의 배려로 골방 하나를 거처로 삼은 다산이 몸과 마음을 새롭게 다잡아 교육과 학문연구에 헌신키로 다짐하면서 붙인 이름으로
"네가지를 올바로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다산은 생각과 용모와 언어와 행동, 이 네가지를 바로하도록 자신을 경계하였던 것이다.
"생각을 맑게 하되 더욱 맑게, 용모를 단정히 하되 더욱 단정히, 말(언어)을 적게 하되 더욱 적게, 행동을 무겁게 하되 더욱 무겁게" 할 것을 스스로 주문하였다.
블라블라~~ 네 네 좋은 말씀들이군요.
그런데 이 곳에서 유명한 건 다산선생만이 아니더군요. 바로 이분, 이분이 이 곳의 진정한 스타
주모???
네 사극에서 단골로 출연하는 그 주모가 맞습니다.
사의재 바로 옆에 주모상이 있고 주막도 차려져 있었습니다.
왜 정약용 상 대신에 주모 상이 떡하니 있는지 궁금하실 분들이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처음엔 의아했는데 바로 이 주모가 오늘의 다산 정약용을 있게 한 멘토였더라구여
무슨소리냐구여?
다산이 처음 이 곳 강진에 유배를 와서 처음 1년간 골방에서 멍때리며 폐인생활을 하고 있던 중 주막 주모가 보다 못해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하네요.
(유배 온 다산을 모두가 기피하였는데 주막 주모가 다산을 돌보겠다고 나서 주막 한켠에 다산의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고 합니다.)
어찌 그냥 헛되이 사시려 하는가? 제자라도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
이게 얼마나 센세이션한 발언이냐면 말이죠.
병조참의와 암행어사 등 요직을 두루 거친 40세의 정약용은 지금으로 치면 장차관급 요직을 지낸 거물중의 거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정약용에게 일개 아녀자, 그것도 주막 주모가 혀를 끌끌차며 너 한심해 못보겠으니 요고라도 해보라고 크게 일침을 가한 것이죠.
정약용은 이 때 큰 깨달음이 있었는지 아님 자기 자신이 부끄러워졌는지 그날 부로 제자를 받아 가르치고 집필활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는 경세유표, 목민심서 등의 도서들도 이 시기에 저술된 것이며 강진에서의 유배생활 중 약 500여권의 서적을 집필하였다고 합니다. (실학의 집대성 ㄷㄷㄷ)
주막 앞에서 열심히 설명하고 계시는 관광택시 기사분( 해설사를 겸직하고 있더라는 )
with 러블리 와이프님 찬조출연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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