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작업실
10월의 시작
구은정
2025.10.02 06:02
조회수 18
갑자기 9월부터 2년 전에 만나진 인연들과 다시금 연이 닿았다. 무릎이 아파서 몸을 사리려 했는데 결국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엄지 발톱에 피멍이 든. 양쪽 발톱 다 그래서 주인 잘못 만나 고생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발톱은 깨져있고 날마다 시커멓게 물들어가고 있다. 마치 내 발톱만 짙은 밤이 새겨진듯. 그래도 골절상이나 발톱이 흔들려서 뽑힐 정도가 아니니 다행이지 않냐는 희망 회로를 돌려본다.
오랜만에 만난 분들은 대부분 다정했다. 한 분은 예전에도 나를 참 잘 챙겨주셨던 분인데, 내가 뭘 좋아하는지 귀담아 듣고 계셨나보다. 나는 성격상 나를 잘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데, 말이 많아지는 순간은 편한 사람과 대화할 때 뿐이다. 호응해주고 리액션은 해주지만 속안에는 다른 감정이 맴돌때도 있다. 나는 사실 사람을 제법 가린다. 마음을 잘 주지도 않는 편이다. 줘봤자 나를 가벼운 사람 취급할 때는 어쩐지 웃고 있어도 마음이 시큰해서. 어쨌든 자신의 아들과 연결시켜 나에게 요거트 하나를 건네셨는데 마음이 뜨끈해졌다. 나는 그 분이 내 이름을 불러주실 때 참 따스했다는 기억이 계속 올라왔다. 지나치게 감사하기도 싫고 의미부여도 싫지만 그것도 마음의 일부분 을 내어준거라고 여겼다. 가끔 마음없이 물질만 내어주는 이도 있었는데, 웃고 있어도 마음이 늘 공허했다. 그 공허함을 아는 이가 나밖에 없다는게 쓸쓸했다.
희랍어 시간은 두번을 읽었다. 흰을 읽어둬서 그런지 이어진다. 하얗고 빨갛고 죽음과 삶과 상실과 폭력과 이번에는 언어에 대해. 남자가 같은 한국인인데 그 여자에게만 웃는다. 여자는 아들에게만 웃음을 보인다. 여자는 엄마의 죽음과 남편과의 이혼. 아들을 영원히 만날 수 없다는 상실로 점점 말을 잃어간다. 그럼에도 희랍어에는 진심이다. 희랍어를 가르쳐주는 강사인 그 남자의 언어들이 여자의 꺼져가는 불씨를 채워준다. 남자는 라일락향기 짙은 한 여성에게 정신적, 육체적 상처를 받는다. 눈이 점점 멀어지는 그 남자는,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여성에게서 날선 생채기를 얻은 것이다. 남자의 얼굴에 눈물같은 희미한 상처도 17살때 그 여성에게서 받았다. 그 남자도 온전하지 못한 몸과 상실에서의 고독이 있다. 어느날 날아든 박새 한마리가 그들을 이어준다. 고통 속에서 정신을 못차리는 희생으로. 남자의 목소리가 여자의 죽어가는 혼을 채운다. 따스한 온기로 이내 여자에게 숨을 불어넣는다.
실제 작가와 여자의 모습이 제법 겹쳐지는 부분이 많아서 언어를 사랑하는 자신을 빗대어 쓴것만 같다. 겉은 로맨스, 안은 연약한 인간에게 있어 사라질 지언정 서로를 연결짓는 언어적 사유가 가득하다. 굉장히 고요하고 문장들이 눈처럼 내려앉아서 천천히 호흡하며 읽어야 한다. 괜히 섬세해지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엽게 느껴진다. 여운이 꽤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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