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작업실
11. 원(怨) 한(恨)
누리 ph.D
2025.07.18 16:33
조회수 72
원(怨)의 일본
한(恨)의 한국
밤새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하늘이 원망(怨望)을 쏟아낸 것일까요,
아니면 누군가의 한(恨)이 서린 눈물이었을까요.
아침이 되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고요해졌습니다.
누리는 그저 산책 갈 생각에 아침부터 들떴습니다.
해맑은 누리와 함께 산책에 나서자,
며칠 전에 무지개를 보여주었던 냇가의 물살은
거세게 변해 있었습니다.
마치 누군가의 원통한 마음이
대자연을 타고 쓸려 내려온 듯한 풍경이었습니다.
오늘은 '원(怨)의 정서'와 '한(恨)의 정서'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일본은 원(怨)의 정서를 지닌 나라,
한국은 한(恨)의 정서를 지닌 나라라고
종종 이야기되곤 합니다.
‘원’과 ‘한’에 공통적으로 담겨 있는 핵심 키워드는
바로 ‘귀신’입니다.
다시 말해,
일본의 귀신은 상황이 불만스러워
‘원(怨: 분노와 미움)’을 표현하는 존재이며,
한국의 귀신은 서러움이 가슴에 맺힌
‘한(恨: 억울함과 슬픔)’을 간직한 존재입니다.
헤이안 시대에 ‘모노노케(物の怪·もののけ)’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문헌에 기록됩니다.
특히 헤이안 말기는 기근과 역병이 극심하여,
사람들의 고통이 매우 컸습니다.
사람들은 이 재앙들을 신이나 악령,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존재의 소행으로 여겼어요.
‘모노노케(物の怪·もののけ)’는 사람들의 공포를 상징합니다.
문헌 속에는 “귀물이 모습을 바꾸어 사람을 도살한다”거나,
“분노한 귀령(鬼靈)의 저주로 역병이 퍼진다”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요괴인 ‘오니(鬼)’ 또한
전염병의 창궐과 깊은 관련이 있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일본의 요괴는 자연재해와 역병에 대한 공포와 무력감에서
탄생한 존재이며,
'원(怨)의 정서'를 반영해
집단의 고통과 비극을 초자연적 저주로 설명하고자 하는
심리적 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한국의 귀신은
주로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존재’로 인식됩니다.
한(恨)이 맺힌 채 세상을 떠난 이가 죽은 뒤에도
강자가 되어 살아 있는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거나,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한국의 귀신은 억울한 죽음을 맞은 ‘약자’가
죽음 이후에 강력한 존재가 되는 과정을 통해 형성됩니다.
그래서 한국의 귀신 이야기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의
메시지를 담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일본의 요괴는 ‘직접적 인연이 없는 존재’이자,
‘특정 대상을 겨냥하기보다는 불특정 다수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로 여겨집니다.
이들은 이해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두려운 존재로,
잦은 자연재해 속에서 형성된 일본인의 공포심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일본의 요괴 문학은 ‘퇴치’나 ‘소멸’을 통해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미를 강하게 지니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주제를 상징하는
지브리의 『모노노케 히메(もののけ姫)』 속
명대사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みんな見ろ、
これが身のうちに巣食う憎しみと恨みの姿だ。
肉を腐らせ、死を呼び寄せる呪いだ。
これ以上憎しみに身を委ねるな。
"모두들 봐라.
이것이 우리 안에 도사리는 증오와 원한의 모습이다.
살을 썩게 하고, 죽음을 불러오는 저주다.
이 이상 증오에 몸을 맡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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