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작업실
꽃다발과 키스와 에르디
블루문
2025.06.18 00:23
조회수 24
사람의 애정은 가장 위대한 예술이다.
여름 초입의 밤 퇴근길, 하루의 피로가 어깨에 묵직이 내려앉은 시간. 골목을 걷다 문득, 꽃다발을 든 한 중년의 남자를 마주쳤다. 살짝 상기된 얼굴, 발걸음은 비틀거렸지만 그 손에 쥔 꽃은 단정하고 조심스러웠다. 아마도 사모님께 드릴 꽃이겠지? 하루를 마친 뒤에도 누군가를 위해 꽃을 들고 돌아가는 그 마음은, 세상 어떤 명화보다도 아름다웠다.
조금 더 걷자, 또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둑한 골목 어귀, 서로를 끌어안은 채 강렬하게 입맞춤을 나누던 사십대쯤의 연인. 젊음의 번뜩이는 열정이 아닌, 시간이 빚은 익숙하고 단단한 감정이었다. 그 짧은 순간의 포옹 속엔 수많은 시간과 녹아 있겠지. 마치 오래된 클래식처럼, 듣는 이마다 다른 감정을 품게 하는, 깊은 울림의 사랑.
그리고 나는 현관 앞에서 택배 상자를 집어 들었다. 아마도 클래식 LD 10여장이 담긴 오래된 음악들이 잠든 상자. 내일 열어볼 그 상자 안엔 과거의 시간, 누군가의 열정, 아마도 나를 울릴 멜로디가 담겨 있을 것이다.
사람의 애정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예술이다. 그것은 화폭에 담기지 않아도, 음표로 적히지 않아도, 누군가의 눈빛과 손끝, 혹은 무심한 발걸음 속에 살아 있다. 축복받은 이들은 그 예술 속을 걸으며, 때론 배우고, 때론 그려가며 살아간다.
밤은 깊어가고, 마음 한켠엔 이상하게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다. 어쩌면, 오늘 본 그 몇 장면이 내 마음에도 조용한 클래식처럼 울리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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