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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을 위한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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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집

2024.11.27 10:26

조회수 5496


about #라이프집에세이

#라이프집에세이는 개성적인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크리에이터의 집 생활에 관한 에피소드를 공유합니다. 집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행하는 나만의 철학을 갖고 싶다면, 라이프집 에세이에서 인사이트를 얻어보세요!






📝 writer. 김수진(@movingroom)

큐레이션 서점 어쩌다 책방과 어쩌다 산책을 운영한다. 책을 매개로 다양한 형태의 공간을 기획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방의 가구를 자주 옮기는 탓에 무빙룸movingroom이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반복이 그려낼 무늬를 기다리며 매일 성실히 움직이려 한다. 그 이야기를 블로그 <움직이는 방의 이야기>에 기록하고 있다.






©김수진



⊹


며칠에 걸친 회의 끝에 뭉툭한 상영 규칙을 만들었다.
화요일은 고전(~1970), 목요일은 모던클래식(1980~1990),
여유가 있다면 주말에는 동시대 영화(1990~)를 추가 상영한다.
그 범주 안에서 최종 상영작은 그날의 기분에 맡긴다.
목록을 만들고 규칙을 정하면서
집에서 영화를 보는 일에 지나지 않았던 이 일이
흡사 극장을 운영하는 모양이 되어갔다.
우리는 이 극장에 무빙씨어터Moving Theater라는 이름을 붙였다.


⊹



두 사람을 위한 극장



나는 지난여름부터 극장을 운영하고 있다. 프로그래머는 두 명, 관객도 두 명이다. 이 극장은 상영하는 영화보다도 다양한 간식 메뉴로 인기가 많다. 라따뚜이와 파스타, 마라샹궈와 샤브샤브, 갖가지 토핑을 올린 요거트 아이스크림까지. 그렇다. 화려한 메뉴를 자랑하는 이 극장은 다름 아닌 우리집 거실이다. 시작은 이름 때문이었다. 책을 읽다 보면 여러 책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감독들이 있었다. 존 포드, 잉마르 베르히만, 페데리코 펠리니, 알랭 레네, 구로사와 아키라. 문장에 낯선 이름이 등장할 때마다 흐린 눈으로 마침표부터 찾았다. 책을 다 읽은 후에도 미진한 느낌이 남았다. 작가가 그 영화를 보고 감응했을 무언가를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집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애인에게 영화 보기를 제안했다. 나(프로그래머1)와 애인(프로그래머2)은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보고 싶은 영화들을 적어나갔다. 각자 한 시간 정도 작성한 뒤 서로의 목록을 나란히 두고 보았다. 감독과 영화제목, 개봉년도까지 빼곡하게 적힌 나의 목록과 달리 애인의 것에는 영화의 제목만 단출하게 적혀있었다. 잊고 있었다. 그는 영화 제목만 말해도 감독의 이름뿐 아니라 감독의 탈모 진행 상황까지 꿰고 있는 영화 전공자였다는 사실을. (그게 영화를 전공한 것과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목록은 꽤 달랐지만 애써 보지 않으면 볼 일이 없는 영화들이라는 점은 일치했다. 하지만 두 관객을 모두 만족시키는 목록을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대별 대표작을 볼 건지, 언어권으로 나눌 건지, 계보를 잇는 감독들을 분류할 건지. 며칠에 걸친 회의 끝에 뭉툭한 상영 규칙을 만들었다. 화요일은 고전(~1970), 목요일은 모던클래식(1980~1990), 여유가 있다면 주말에는 동시대 영화(1990~)를 추가 상영한다. 그 범주 안에서 최종 상영작은 그날의 기분에 맡긴다. 목록을 만들고 규칙을 정하면서 집에서 영화를 보는 일에 지나지 않았던 이 일이 흡사 극장을 운영하는 모양이 되어갔다. 우리는 이 극장에 '무빙씨어터Moving Theater'라는 이름을 붙였다.


영상이나 영화를 뜻하는 단어 ‘무빙이미지Moving Image’는 움직이는 이미지를 의미한다. 하지만 무빙씨어터에서는 이미지가 아니라 관객이 움직인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영화의 길이는 인간 방광의 한계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빙씨어터에는 방광의 한계도, 움직임의 한계도 없다. 언제든 화장실에 갈 수 있고 무슨 음식이든 먹을 수 있다. 영화 관계자분이 이 글을 보신다면 영화에 집중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이 극장의 운영 방식에 개탄하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자유로움 덕분에 퇴근 후 일과를 지키면서도 수십편의 지루한 영화를 완주할 수 있었다.



©김수진



하지만 이 극장의 최대 강점은 자유보다는 강제성에 있었다. 집에서 영화 보기는 누워서 떡을 먹는 것만큼 쉬운 일이지만 누워서 떡을 먹다 그대로 잠드는 것도 쉬운 일이다. 이 극장의 상영작들은 애쓰지 않으면 끝까지 보기 어려운 영화들이고 그런 영화들은 보통 3개가 없다. 소리(무성영화), 색(흑백영화), 그리고 재미(!). 언제 잠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었던 건 극장에 한 명의 관객이 더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동안 우리는 감독관이 되어 무거워지는 서로의 눈꺼풀을 들어올린다.


새벽 세 시, 작은 모니터로 영화를 보느라 구겨둔 몸을 펼치면서 생각한다. 무빙씨어터가 아니었다면 총소리만 들려도 몸서리를 치는 내가 존 포드의 서부극 <수색자>를 볼 일이 있었을까. 초월번역으로 유명한 대사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Here’s  looking at you, Kids”를 실제로 확인하겠다고 흑백 멜로 영화인 <카사블랑카>를 끝까지 볼 일이 있었을까. 흐린 눈을 하고 지나쳤던 감독이 내 인생 최고의 영화감독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언제쯤 알게 됐을까. 극장 Theater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의 테아트론theatron에 있다. 당시 이 단어는 무대나 장소가 아니라 ‘볼 것들‘ 또는 ‘관객’을 뜻하는 용어였다. 어쩌면 극장의 주체는 처음부터 장소가 아니라 작품과 관객에게 있었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우린 정말 극장을 만든 걸지도 모른다.



⊹⊹


방의 가구를 자주 옮기는 탓에 ‘무빙룸’이란 이름을 얻은 수진 님은
이번엔 거실에 ‘무빙씨어터’를 만들었습니다.


공간에 쌓이는 우연하고도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믿는 사람은
집에서의 순간도 허투로 보내지 않는 것 같아요!
시간과 공간은 분리해 생각할 수 없는 개념이듯 
무빙씨어터의 상영표는 거실을 차지한 두 사람에게 분명한 ‘극장’을 만들어줍니다.


집스터 여러분은 집에서 어떤 시공간을 짓고 계신가요?
사랑, 취미, 음식, 기록, 고민 등 일상의 해상도를 한 층 높이는 계단을 우리도 쌓아봅시다!

🏡🧡




Credit

Editor Haeseo Kim

Design Jaehyung Park

Production SIDE Collective

200

731

댓글 등록 시 3미닛 적립 (1일 10건까지)

댓글

이은실2

너무좋아요

2025.01.15 20:1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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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456

멋진 집이네요!

2025.01.15 19:2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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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듀0

우와...진짜 영화관 저리가라인데용!?

2025.01.15 19:2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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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람

영화관보다 더 멋진 공간이네요

2025.01.15 13:5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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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애모드

멋지네요

2025.01.14 16:1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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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집스터_431271

아이가 좀 크면 우리집만의 극장을 만들고싶어요

2025.01.14 10:2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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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준

부럽습니다 좋은취미가될것같아요

2025.01.14 09:4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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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기기기

우와 진짜 멋진 공간이네요~

2025.01.13 17:0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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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eety****

나를 위한 공간의 재창조! 👍

2025.01.13 14:1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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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니_

센스가 돋보이는데요~~ 👍

2025.01.12 12:5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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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집스터_429613

나만을 위한 극장 멋지네요

2025.01.12 10:4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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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ㅇ18

분위기가 낭만적인 것 같아요😊

2025.01.12 08:0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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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j74

힐링공간👍 멋져요

2025.01.10 11:5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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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천사랑

집이너무좋네요???부러워요^^

2025.01.09 17:1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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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박카스

집이 영화관이네요

2025.01.08 23:5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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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9

너무 멋지네요. 지금 계절에 딱이네요~~

2025.01.08 22:1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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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이

나만의.극장이라...저도 저의 침대에서 태블릿으로 보는게 저만의 극장이됫네요

2025.01.08 21:4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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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sdhj

극장분위기가 오롯이 살아있어요

2025.01.08 02:3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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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집스터_23880

나만을 위한 극장이라니 멋져요.

2025.01.08 01:5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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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집스터_250269

멋져요!

2025.01.06 23:2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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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집스터_250268

흑백 영화관같아여

2025.01.06 23:1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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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집스터_250267

상영표 아이디어 낭만적이고 좋네요

2025.01.06 23:1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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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집스터_250266

겨울에 이런 분위기라면 너무 행복할듯 해요~~

2025.01.06 23:1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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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집스터_250265

둘만의 영화관 멋있네요

2025.01.06 23:1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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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dow.J

분위기도 공간도 다 좋네요~ 집에서 저런 분위기를 낼수있다니 언젠간 해보고싶네요!

2025.01.06 23:1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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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식1

공간도 좋고, 글도 좋네요.

2025.01.06 21:1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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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콩킹콩

만인의 이상형을 가지고 있어 부럽습니다

2025.01.06 00:1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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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집스터_424009

보기만해도 힐링감이 느껴지고 편한해져요 :)

2025.01.05 11:1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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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lie

한마디로 너무 멋지네요. 정해둔 시간이 있다는 것도 쥬변환경을 저렇게 세팅하신것도 같이 이 모든 시간을 보낼 동반자가 있다는 점도 부러워요.

2025.01.04 23:5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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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지니어스

글을 읽고 나만의 극장을 만들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설렜어요. 집에서 영화를 보는 건 익숙하지만, ‘극장’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목록과 규칙을 만든다는 발상 자체가 정말 신선하고 특별하게 느껴졌어요. 저는 뭔가 거창한 장비나 환경이 필요할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간단한 방식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그리고 ‘무빙씨어터’라는 이름이 정말 매력적이에요. 관객이 움직이고, 자유롭게 간식을 즐기며 영화를 보는 모습이 상상만으로도 즐거워요. 그리고 ‘소리, 색, 재미가 없는 영화들’을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던 비결이 서로의 눈꺼풀을 들어올리는 감독관 역할이라니, 유쾌하면서도 현실적이라 웃음이 났어요. 저도 간단한 규칙과 목록을 만들어서 제 버전의 작은 극장을 열어볼까 해요. 좋은 영감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2025.01.04 18:4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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