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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내게 말을 걸어올 물건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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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집

2024.10.30 10:27

조회수 6935


about #라이프집에세이

라이프집에세이는 개성적인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크리에이터의 집 생활에 관한 에피소드를 공유합니다. 집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행하는 나만의 철학을 갖고 싶다면, 라이프집 에세이에서 인사이트를 얻어보세요!






📝 writer. 정멜멜 (@meltingframe)

서울에서 동료들과 스튜디오 ‘텍스처 온 텍스처’를 운영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다양한 규모의 국내/외 브랜드와 매체, 작가와 디자이너들과 함께 관련 프로젝트들을 진행한다.


최근 비인간동물과 그들의 반려인, 보호자, 활동가와 후원자를 사진과 대화로 기록하는 프로젝트 '올루 올루' 를 시작했다.




©정멜멜



⊹

언젠가 나의 나이 많은 고양이가 세상을 떠나면
주인을 잃어버린 물건들이 잔뜩 생길 예정이다.
아껴서, 잘해주고 싶어서, 사랑해서 사준 물건들이
나에게 상실감을 안길 수도 있다.
어떤 계절에, 빛이 들어오는 오후면 늘 앉아있곤 하던
의자 위 담요는 한순간에 거친 파동을 일으켜
나를 힘들게 할 것이란 걸 예감하고 있다.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갑작스레 이사를 결정하지 않는 한
그가 떠나고 난 나의 집은 어쩔 수 없이
그와의 추억이 담긴 그릇이 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함께 했음을 증명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도 안다.

⊹



언젠가 내게 말을 걸어올 물건을 산다



거리를 걷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고양이 울음소리를 들었다. 서울시 전체 전철역 중 혼잡도가 5위 안에 든다는, 유동 인구가 유난히 많은 역 근처였다. 못 듣고 지나칠 수 있었던 그 미약한 음성을 함께 걷던 지인이 들었고, 전선 뭉치 사이에서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벌써 16년 전의 이야기다.

갑자기 아무것도 모른 채로 고양이를 데리고 오게 된 나는 시급하게 필요한 물품부터 검색했다. 모래와 사료. 고양이는 모래를 펼쳐주면 알아서 화장실로 쓴다고? 그런 광경을 본 적도 없고 태어나서 모래를 사본 적 역시 한 번도 없었다. 믿기지 않았지만 급하게 마련한 박스에 모래를 부어주니 들어가 오줌을 누는 고양이를 보면서 예감했다. 단 한 번도 사지 않았던 것들, 나에게는 전혀 필요하지 않았던 것들을 구매하며 앞으로 살게 될 것이란걸.


©정멜멜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를 위해 때가 되면 꼭 사야 하는 사료나 영양제, 간식을 제외하고도 여전히 많은 것들을 구매한다. 혹은 구매했던 것을 눈물을 흘리며 빼앗기기도 한다. 혼자 덮어야지, 하고 큰맘 먹고 산 프리미엄 마이크로 화이버 솜 차렵이불을 빼앗기는 데 이틀 정도 걸렸다. 부드러운 것을 찾아내는 센서라도 있는 걸까. 선물 받은 핀란드의 울 블랑켓은 거의 펼쳐놓자마자 내 것임을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총구를 들이대며 협박하거나 하는 난폭한 방식이 아니라 그저 그 위에 우아하게 하지만 위엄 있는 모습으로 앉아버림으로써 백기를 들게 만든다.

고양이의 생애 단계별로 새롭게 구매하게 되는 것들도 계속 생긴다. 스스로 그루밍을 하지 않기 시작했을 때는 심란한 마음으로 죽은 털을 완벽히 제거해 준다는 실리콘 돌기 브러시를 구입했고, 집에서 매일 피하 수액을 놓기 시작한 이후로는 정기적으로 주사기와 나비침, 알코올 솜과 소독용 에탄올이 구입한다. 이런 게 필요하구나... 16년 전, 처음 모래를 구입하는 그때의 마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직업상 타인의 공간에 방문할 일이 많고, 습관적으로 구석구석을 살펴보게 된다. 즐거운 일이다. 푹신한 방석, 만듦새가 뛰어난 밥그릇, 사용감이 느껴지는 스크래쳐, 매일 몸에 채워줄 하네스, 발톱 자국이 잔뜩 난 소파나 슬리퍼, 낡아 실밥이 터져 나왔지만 너무 좋아해 버리지 못하는 인형... 가장 친밀한 존재가 좋아하는, 혹은 그 존재를 위해 인간이 대신 고른 물건들의 면면을 바라보게 된다. 보통은 반려동물이 자주 지나다니거나 좋아하는 곳, 혹은 편안함을 느끼는 곳에 있는 그 물건들은 몇 시간의 대화만큼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반려인의 취향이 반영된 물건도 있지만 누가 봐도 아예 배반해 버리는 물건들을 볼 때 오히려 사랑을 느낀다. 극단적인 시크함과 모던함을 추구하는 사람의 집에서 탄성 와이어에 화려한 깃털과 방울이 달린, 무채색의 공간에서 무시무시한 컬러와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는 티저 토이를 여러 개 발견하면 어쩔 수 없이 슬며시 웃음이 나는 것이다. 심지어 취향뿐 아니라 성향을 배반하기도 한다. 자신의 물건은 딱 필요한 것만 구비하는 듯 보이는 미니멀리스트의 집에서 여러 개의 크고 작은 장난감이 가득한 반려동물 장난감 바구니를 보았을 때, 크지 않은 방에 거대한 캣타워를 두고 고양이 집에 잠시 얹혀사는 것처럼 살고 있는 사람의 집에 방문했을 때. 그 마음을 너무나 이해하고, 어이없고 웃기다. 그리고 그렇게 깨닫는다. 한정된 시간과 공간을 기꺼이 나눈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뜻이라는걸.

언젠가 나의 나이 많은 고양이가 세상을 떠나면 주인을 잃어버린 물건들이 잔뜩 생길 예정이다. 아껴서, 잘해주고 싶어서, 사랑해서 사준 물건들이 나에게 상실감을 안기게 될 수도 있다. 어떤 계절에, 빛이 들어오는 오후면 늘 앉아 있곤 하던 의자 위 담요는 한순간에 거친 파동을 일으켜 나를 힘들게 할 것이란 걸 예감하고 있다.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갑작스레 이사를 결정하지 않는 한 그가 떠나고 난 나의 집은 어쩔 수 없이 그와의 추억이 담긴 그릇이 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함께했음을 증명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도 안다.

나는 낯선 고양이를 만나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로 들어섰으며 그 안에서 생활을, 규칙을, 애착을 다시 정립하거나 무너뜨렸고 그 변화를 받아들였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경이로웠던 경험과 시간을 그가 남기고 간 작은 빗 하나를 보며 떠올릴 것이다. 알고 있지만, 피할 수 없지만, 받아들여야 함을 알고 있지만 가능한 늦게 찾아오기를. 매일 밤 집으로 돌아가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바란다.


©정멜멜


⊹⊹

정멜멜 작가님이 공유해주신 ‘집에서의 창의적인 활동’은
반려동물의 건강과 취향, 습관 등을 고려한 물건을 들이는 것이었습니다.

함께하는 아지트에 쌓여가는 앙증맞거나 거대한 물건들,
그 물건 하나하나에 녹아든 인간의 고민과 반려동물과의 교감.
‘우리 생에서 사랑과 공존을 위한 행동보다 창의적인 영역이 또 있을까?’ 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품게 만드는 에세이였네요.

집스터 여러분의 집에는 어떤 ‘사랑의 흔적’이 펼쳐져 있나요?
반려동물의 무릎 관절을 고려한 매트? 이사할 때 선물로 받은 식물들? 무수한 아기용품?
‘지금’을 함께하는 존재가 내 삶에 있음을 알리는
사랑스러운 집의 조각들을 댓글로 공유해 주세요! ❣️




Credit

Editor Haeseo Kim

Design Jaehyung Park

Production SIDE Collective

219

964

댓글 등록 시 3미닛 적립 (1일 10건까지)

댓글

앵두

아아 너무 마음이ㅜ포근해져요

2024.11.27 15:3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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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삐약삐약

정말 오래오래 행복하시길.
​행복한 순간들은 느리게 느리게 지나가길.

2024.11.27 13:2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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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119

오래오래 행복하시길

2024.11.27 10:1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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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집스터_340630

각증소품과 고양이와의 교감이 곳곳에 묻어있네요

2024.11.27 03:2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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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베리 0

고양이와 인테리어 그림같아요

2024.11.27 01:4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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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높이

냐옹 오랜만에 함께살던 양이들이 생각나네요

2024.11.26 22:5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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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희0

평화로운 순간이 예쁘게 포착되어 있네요

2024.11.26 22:2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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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113

고양이.. 정말 귀여워요.. 고양이는 배변 훈련을 따로 할 필요가 없는가봐요? 신기하네요

2024.11.26 20:4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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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송이💜

제집엔 책투성이인데 그래도 부족하여 지꾸 사네요. 사는 속도가 읽는 속도보다 빨라요 ㅠㅠ 책이랑 냥이랑 공존할 수 있을까요. 냥이도 좋아하는데 늘 고민

2024.11.26 17:1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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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란

요즘
엔 초록과 파란색이 더 정이가요 그래서 신발이 예쁘네요

2024.11.26 16:5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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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루루

쨍한 파란색 슬리퍼가 색감이 참 예쁘고 독특하네요

2024.11.26 16:4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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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집스터_1975

고양이 너무 귀엽네요

2024.11.26 16:2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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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haa

맞아요 물건마다 세월과 추억이 같이있죠 공감합니다

2024.11.26 15:4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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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고양이♥

감성이 묻어나는 글이네요 공감하구가요

2024.11.26 14:2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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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집스터_377376

편안한글이네요

2024.11.26 14:1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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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i

고양이가 떠나면 주인잃은 물건들이 많아진다는 내용.. 너무 공감합니다 ㅎ 저도 고양이집에 얹혀 살고있거든요 고양이는 사랑이에요

2024.11.26 11:4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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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JJ518

따뜻
해지는 글 잘읽었어요

2024.11.26 10:5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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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집스터_378093

치즈냥이??라고 하나요 저 아이들

2024.11.26 10:2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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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킹이

귀엽당

2024.11.26 09:4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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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슈마미

말을 걸어올 물건이라니 너무 좋네요

2024.11.26 09:1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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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집스터_365502

마음 따뜻한 이아기 김사힙니다

2024.11.26 08:0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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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오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관점인데 저도 이렇게 한번 생각해봐야겠어요 위로 받는 글이네요

2024.11.26 02:0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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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power

분위기가 너무 따뜻해요😍

2024.11.25 23:0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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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872****

따뜻한글에 따뜻해보이는 고양이의 사진까지♡추운겨울 마음까지 따뜻해 지네요

2024.11.25 22:1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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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재일

사랑의 흔적이라는 말에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주변에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는지 둘러보게 됩니다😍​

2024.11.25 21:4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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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iGOround

주로 내가 말을 거는데...

2024.11.25 21:0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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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집안이너무좋아

아아 너무 마음이ㅜ포근해져요

2024.11.25 20:0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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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ld

고양이 넘 귀엽습니당

2024.11.25 19:5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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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H7

말을 걸어온다니...감성적인 문장같아요. 나중에 꼭 써먹어봐야지 ㅎㅎ

2024.11.25 19:0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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씽씽0

고양선생 키우고 싶네요 집은 아늑한공간

2024.11.25 18:4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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