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혼례를 하는 한옥이 내려다보이는 베란다라니. 어떻게 계동으로 이사를 오게 됐나요?
2021년 9월 초에 왔으니 벌써 2년이 되어 가네요. 계동은 산을 포함해 녹지가 비교적 많은 지역이라 푸르른 녹음을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어요. 이 집을 처음 본 날로 계약을 진행한 것도 그 이유가 컸어요. 저는 굽어보이는 한강보다 어느 각도에서든 마주치는 생동감 넘치는 식물에 끌려요. 동거인과 함께 살던 망원동을 떠나 두 번째 집을 고를 때 우선순위였던 초록색 풍경과 발코니, 이 두 가지가 충족되는 곳이었어요. 특히 건너편 이웃집의 풍성한 대나무들이 흔들리는 모습에 확신의 느낌을 받았고요. 창문 너머로 보이는 이 동네 풍경은 아침부터 한밤까지, 사계절 내내 질릴 새 없이 아름다워요.
주거지역으로는 다소 생소한 동네에 살고 계세요.
계동은 이전에 살던 망원동에 비하면 주거 인구밀도가 낮은 곳인데요. 통계를 확인했더니 서울시에서 두번째로 주거 인구가 적은 지역이더군요. 그래서인지 망원동처럼 규모가 큰 시장이 없는 건 아쉽죠. 시장 규모가 작으면 자연히 물건의 값이 오를 수 밖에요. 과일도, 싱싱한 채소도 사 먹기 부담스러울 때가 있어요.
망원동에 사실 때 사람들을 모아 글을 쓰거나 대화를 나누는 커뮤니티 모임을 하셨죠?
2019년 여름 쯤이었는데, 당시에 제가 우연히 만나게 된 사람들이랑 글쓰기 합평 모임을 하게 됐어요. 각자가 써야하는 글을 저희 집에 와서 쓰는 모임이었는데, 베이킹을 시작하면서 ‘남의집’이라는 플랫폼을 통해서 ‘빵이 있는 글쓰기 모임’을 기획해서 꽤 오래 지속했었어요. 코로나 유행시기에 중단했다가 4인 이상 모임이 허용될 때 재개하면서 2022년 까지 계속 해왔어요.
‘빵이 있는 글쓰기 모임' 재밌네요. 빵을 매개로 한 글쓰기 모임이라니.
사람들이 모이면 뭐라도 차려놓고 같이 먹으면서 이야기든 뭐든 하게 되잖아요. 제가 당시 부담없이 제공해줄 수 있던 건 빵이었던 거죠.
사람들을 초대하기에 좋은 집 구조나 기능에는 어떤 것이 있던가요?
망원동 집은 집 중앙에 거실이 있었고 여기에 큰 테이블을 뒀었어요. 거실이 주방과 떨어져 있기도 했고, 저랑 동거인의 작업방이나 화장실을 관통하는 위치였어서 주말에 사람들을 초대하면 동거인이 불편했을 거예요. 지금 이 집에서는 베이킹도 글쓰기 모임도 더 본격적으로 할 수 있기를 바랬어요. 그래서 우선 주방 옆 공간에 다이닝이자 모임을 할 수 있는 전용 공간을 마련했어요. 문이 달리지 않은 작은 방 개념의 공간이죠. 애초에 더 사회적인 공간으로 활용하려고 가구도 짜고 기다란 식탁도 들였어요. 식탁 옆에는 기존의 수납장을 오픈형 공동 책장으로 만들었어요. 책장을 훑어보고 흥미로운 책을 뽑아 보고 대화도 시작할 수 있게요.
글쓰기 모임 이전부터 빵을 구우신 건가요? 어쩌다 굽게 되신 거예요?
사실 빵을 만들기 시작한 시기는 돈이 너무 없을 때 였어요.(웃음)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프로젝트로 일하다 보니 수입이 급격히 줄었거든요. 소비를 줄이느라 밥은 직접 해먹었는데, 매일 먹는 식빵을 맛있는 걸로 구하자니 일주일에 만 원 이상은 드는 거에요. 어느날 동네 빵집에서 비싸지도 않은 두 종의 식빵을 놓고 500원 차이 때문에 더 싼 걸 집다가 ‘아, 그냥 식빵도 만들어 먹을까’ 생각했죠. 바로 그날 유튜브를 검색해서, 간단히 만들 수 있고 몸에도 좋은 통밀식빵을 만들어 봤어요. (유튜브 채널 ‘요리하는유리’의 세상 간단한 통밀 식빵 레시피를 강력 추천합니다!) 너무 맛있더라고요. 하다 보니 점점 만드는 데 재미가 들려 기본 식빵 말고 손 많이 가는 것들도 다 만들어보고 싶어졌어요. 스콘이나 쿠키같은 제과는 쉽웠고, 촛불 키고 싶은 날엔 케이크도 만들었죠. 감자빵, 마늘빵, 크로아상, 치아바타도 만들어 봤어요. 지금은 통밀 식빵, 스콘, 피자를 주력으로 상황에 따라 만들고 있어요.
맨 처음 첫 통밀빵이 부풀어 오를 때 느낌이 어땠는지 기억나세요?
반죽이 발효가 돼서 이렇게 풍성해지는데, 와, 이거 내가 먹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발효가 되기 전 반죽은 식빵 틀의 반 정도 차요. 그걸 보면 ‘이게 진짜로 내가 먹을 수 있을 것인가’ 싶거든요. 사실 재료 배합하고 반죽하는 건 내가 하지만 발효는 반죽이 알아서 해줘야 하는 거니까요.(웃음) 그래서 부푸는 걸 보니까 ‘와, 이게 되는구나. 내가 만들어서 직접 먹을 수 있구나’ 싶더라고요.
원래 베이킹이나 요리하는 걸 즐기는 편이었나요?
부모님과 살 때도 심심하면 곧잘 쿠키를 굽거나 피자를 만들곤 했어요. 시간적 여유가 있거나, 시간은 없지만 일하면서 스트레스 받을 때 요리를 하곤 했고요. 월간지 기자를 할 때도 일이 맘대로 안 풀리면 퇴근하다가 중간에 마트에 들러 재료를 사서 집에서 해 먹었죠. 어떤 간섭도 받지 않고 외부 영향 없이 내가 컨트롤하는대로 원하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요리가 마음의 안정을 줬죠.
가장 만들기 좋아하는 빵은 어떤 거예요?
초콜릿이나 설탕 같은 부재료가 필요하지 않은 빵, 한 끼 식사가 되는 빵 만들기를 좋아해요. 손으로 만지는 방식을 좋아하고요. 보기에도 귀엽지만 만질 때 반죽이 진짜 귀엽거든요.
30대의 삶에 대해 다루는 독립잡지 <삼>을 펴내기도 하셨죠. 여기서도 ‘조리하는 삼’이라는 코너에서 식빵을 만들어 먹으며 느낀 소회를 나누었고요.
내 먹거리를 내가 온전히 만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베이킹이 제게 주는 효능감이자 기쁨이에요. 밥 아닌 다른 것도 지을 수 있으니 먹이 활동이 풍성해지거든요. 처음 식빵 만들기를 시작했을 때는 돌이켜 보면, 당시의 저는 커리어에 대한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해있었어요. 베이킹이 활동이자 취미로 일상에서 좋은 영향을 줬다고 생각해요. 일을 안 하고 있는 불안한 순간에도 일단은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었으니까요. 돈이 없어도 관계성을 잃지 않는 데에 큰 도움을 주기도 했고요. 빈손으로 갈 수 없는 곳에 빵을 구워 가면 손이 부끄럽지 않았거든요. 빵 싫어하는 사람은 드물고, 어딘가에 꼭 보관해야 하는 물건도 아니니 받는 사람도 부담없고 좋잖아요.
베이킹을 하기 전과 후 삶이 확연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을까요?
빵을 만들 줄 아는 삶은 그 이전의 삶과 완전히 달라요. 운전할 수 있는 삶과 그 이전의 삶이 기동성과 그 기동성이 넓히는 경험 때문에 완전히 달라지는 것처럼요. 소비로 대행하지 않고 직접 만드는 활동이 있는 삶은 그게 뭐든지간에 그 활동이 없던 삶과 완전히 달라지는 것 같아요. 나 아닌 다른 모든 것과 관계 맺기의 차원에서요. 식빵 만들면서 피자도 자주 만들다보니 빵을 넘어 음식으로 넘어간 거다 보니 뭔가를 직접 만드는 데 자신감이 붙어요. 사실 빵, 음식을 떠나서 뭔가 하나를 내가 만들어서 온전히 영유할 수 있다는 감각 자체가 그렇게 만드는 것 같아요.
베이킹 활동을 돕는 도구에도 관심이 있는 편인가요?
원래 저는 ‘뭐든 (도구) 없이도 만들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는데 도구가 다양하면 확실히 만드는 과정과 결과의 질과 양이 올라가더라고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도구는 실리콘 스크래퍼와 스텐 보울이에요. 반죽 버려지는 걸 ‘극혐’하거든요. 쌀 씻거나 밥솥 설거지 할 때 쌀 한 톨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 같은 거에요. 한 알의 밀이 빵이 되기까지 들어간 노력과 소모된 에너지를 결코 헛되이 보낼 수 없거든요. 스텐 보울은 가볍고 깨지지 않아서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어요. 스텐 보울에서 발효된 반죽을 분리할 때 스크래퍼를 정열적으로 사용합니다.
베란다에 작물도 키우시는 것 같던데.
식재료의 특성을 잘 알수록 그걸로 만들 수 있는 것을 상상하는 능력도 올라가요. 어떤 빵을 만들건 바질과 루꼴라는 재료와 섞거나 곁들이기 좋은 애들이잖아요? 얘네들 모두 씨앗부터 심어 길러 여름을 맛있게 보내는 편이에요. 루콜라는 피자 만들어 먹을 때 얹어서 먹다 보니까 자주 먹게 되더라고요. 모종 아니고 씨앗부터 키워도 잘하면 여름 내내 수확해서 먹고 한 번 더 씨를 뿌릴 수도 있어요. 올해는 지난해 썼던 흙을 또 썼더니 산출이 좋지 않아서 새로운 흙을 주문했어요. 새로 심으려고요. 고추, 조선대파, 호박잎, 청경채도 길러 먹었어요. 4년 내내 키우던 제라늄이 먹을 수 있는 허브 종류라는 건 『HERBARIUM』이라는 책을 통해서 알았어요.
베이킹에 용이하도록 부엌을 사용하는 방법이랄 것도 있을까요?
부엌가구 한 쪽은 베이킹 용도로 쓰고 있는데 더 늘어나지 않도록 필요한 도구만 구비하는 편이에요. 가까이에 조리대와 정수기, 오븐을 두었고요. 발효기 없이 베이킹을 하다 보니 발효에 적정한 온도를 집 안에서 찾았어요. 여름엔 창문 닫은 남쪽 발코니, 겨울엔 싱크대 아래 가동중인 보일러 관 근처가 홈발효에 적절한 위치에요.
베이킹을 할 때 어떤 영상이나 책을 참고하세요?
베이킹이나 요리 레시피는 유튜브 영상으로 봐요. 재료에 관심이 가면 책으로 보고요. 통밀 식빵의 첫 레시피를 본 ‘요리하는 유리(비건)’, 마카롱여사, 국가비 채널을 좋아하고, 그밖에도 다양한 채널을 탐색해요. 세 채널은 특징이나 요리 톤에서 디테일 다르지만, 집에 있는 재료와 도구로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먹거리 생활의 정보를 준다는 공통점이 있는 거 같아요.
좋아하는 베이커리나 재료 및 도구숍을 추천해주세요.
처음 빵을 만들 땐 망원동에서 가까운 동교동에 있는 베이킹 전문 숍 ‘비앤씨마켓’이 있어서 거기서 종이 신문을 펼쳐 읽듯이 찬찬히 구경하고 구매했는데요. 지금은 인터넷 뉴스를 접하듯이 필요한 도구나 재료를 검색해서 인터넷으로 구입해요. 가장 자주 찾는 빵집은 거친 깜빠뉴가 있는 ‘모자이크', 그 다음으론 반죽을 소다수에 넣었다가 굽는 라우겐 크로아상을 만드는 ‘아티장 크로아상'이에요. 베이킹을 하면서 빵집을 안 가는 게 아니라 빵집에 더 예민해졌어요. 내가 만드는 것보다 더 맛있을 수 밖에 없는 빵 종류를 팔거나, 내가 만들면 확실히 시간 대비 개수에서 가성비가 떨어지는 빵이 특히 맛있는 빵집만 가는 거죠. 후자의 대표적인 빵은 크로아상과 치아바타에요.
취미를 넘어 조금 더 ‘본격적'으로 베이킹을 해볼 생각도 해보셨어요? 판매를 한다던가 자격증을 딴다던가.
처음에는 알음알음 주문을 받고 직접 배송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친구들한테 샘플 테스트를 해보기도 하고, 크래프트지 포장랑 박스도 사놓고 그랬었는데. 막상 돈을 받고 팔려니까 또 다시 부담스러워지더라고요. 그냥 내 집에서 만들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팔고 싶은 거긴 했지만요. 혹시 뭐가 잘못 들어가면 어쩌나 싶고, 베이킹을 하면서 얻는 ‘나의 기쁨’과 내가 만든 빵을 산 ‘구매자의 기쁨’을 책임져야 하는 건 역시나 다른 영역이더라고요.
베이킹 관련해서 이루고픈 소망이 있다면요?
전문가 오븐을 구비하고 싶은 소망이 있어요. 가정용 복합기의 오븐 기능을 사용하는데 한 번에 여러 개를 구울 수가 없거든요. 오늘도 빵 세 종 만드는데 네다섯 번에 나눠서 구웠어요. 한 번에 식빵 서너 개만 같이 구울 수 있어도 나눠 먹기 좋겠어요.
와 제빵 배우고 싶을 만큼 인상적이에요
와 멋있어요👍🏻 오랜만에 빵 먹고싶네요
빵을 많이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글을 보니 한입 먹고 싶네요
빵굽는 냄새와 타자치는 소리를 생각하게 되어 괜스레 빵집가봅니다 ㅋㅋ
빵과 글쓰기라니 너무 멋진걸요!! 이런 분을 어떻게 발굴하고 인터뷰하시는지 라이프집 최고에요!!
사진, 글 모두 너무 좋네요
글 읽는 내내 미소가 지어져요. 고소한 냄새도 나는것 같네요 ◡̎ ෆ
글만 보아도 너무 좋네요
와 너무 매력적인 이야기에요
요즘 필요했던 이야기인데 잘봤어요
맛있는 빵에 글쓰기까지 제 꿈이에요!!
맛있는 빵~😄 직접 좋은 재료로 건강하게 만들어 먹으면 더 맛있겠어요!!
빵이 있는 글쓰기 모임이라니.. 너무 매력적이네요. 저도 그런 삶을 도전해보고 싶어요!
너무 좋아요 ^^
최고예요
건강 밥상이네요 멋져요
멋져요!!! 즐겁게 읽었어요~~ 입가에 미소가:)
좋아하는 빵을 직접 해서 드시니까 더 건강한 맛으로 먹을 수 있을것 같아요 저도 만들어보고 싶네요^.^
이 글을 읽고나니 저도 베이킹을 해보고 싶네요!!🥐 멋지십니다👍
역시 무언가를 만드는 취미는 관심에서부터 시작하는것이 신나는것 같아요~ 전 억지로 배워서 안 맞는다 생각하는데 베이킹부터 시작해서 관심가지시는 분들 보면 참 부럽더라구요! 모양도 잘 만드시고👍
빵굽는냄새 정말 좋아하는데 ㅎㅎ 멋지네요
읽으면서 힐링되는 글이네요~ 마음이 따듯해졌어요 ㅎㅎ
자기를 지탱하는 삶이 방식이 되었다는 문장이 왜이렇게 좋은지 몇번을 읽었네요 다들 너무 멋지세요! 💖
완두콩을 잔뜩 사서 앙금도 만들고 국수도 만들어드셨다니!! 완두콩 국수도 궁금해요...!
빵이 있는 글쓰기 모임이라니 너무 좋은 시간이었을 것 같네요ㅎㅎ 답변해주신 베이커리 저도 가봐야겠어요 궁금해지네요👍🏻
나와 친구들을 위한 빵 좋네요
전문가 오븐 공감되네요. 한꺼번에 굽고 싶어요 ㅎㅎ
베이킹을 하는 삶은 정말 저와 다른 삶이지만 여유와 편안함이 느껴져서 좋아요 ^^
🍞 × ✏️ ✍️ 의 조합 왠지 든든한 조합 이네요 ㅎㅎ
일요일 방해받고 싶지 않다요
상차림 예뻐요~ 빵이 주는 든든함과 따뜻함
크 홈베이커로써 정말 멋진 삶인 것 같아요 🫶
베이킹은 기다리는 시간조차 낭만처럼 느껴진다고 지인이 그러더라구요:) 빵이있는 글쓰기 모임이라니!
원하는 공간이네요 이뻐요